| [위드인뉴스 주지원] 연극 <태양>은 두산아트센터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신작으로 2021년 두산아트센터와 경기아트센터가 공동으로 기획/제작한 SF/판타지 작품이다. 밤의 인간 녹스를 인간 마을 나가노 제 8지구에서 햇빛을 받게끔 해 살인하고 도망친 이후로, 해당 마을이 10년간 경제봉쇄를 당하고 그 사이 마을 주민들은 떠난다. 남아있는 마을 대표 준코와 그의 아들 데츠히코, 준코를 짝사랑하는 소이치와 그의 딸 유. 30세 미만으로 추첨해 녹스가 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유의 엄마 레이코는 이미 녹스가 된 지 오래다. 한때 소꿉친구였지만 녹스가 된 카네다는 왕진 의사로서 늙어버린 그의 친구 소이치를 보러 온다. 자신의 딸이 있다는 호기심에 레이코도 방문하고, 한편으로 검문소 직원으로 일하는 녹스 1세대 후지타는 찻잎에도 해박한 큐리오 데츠히코와 친구가 된다.
큐리오 뜻이 뭔지 알아? 골동품이란 뜻이야 처음엔 그저 바이러스로 녹스의 피에 감염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햇빛을 못 볼 뿐이지 신체능력이 우수하고 더이상 노화란 없으며, 논리적 사고로 효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녹스라는 존재가 각광을 받게 되고 녹스가 될 수 있도록 인위적인 약물을 투여하고 나면 녹스가 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전체 인구 중 녹스 비율이 늘어나게 되며 판도는 뒤집어진다. 점점 보통 인간들은 골동품이라는 뜻의 '큐리오'로 멸칭으로 불러지며 수익을 창출하고 유복한 삶을 영위하기 힘들어지는데, 봉쇄까지 된 마을 주민들은 기본적인 수준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녹스로 뽑히는 기회만을 기다리게 된다. 그때 만난 검문소 직원은 기존 녹스와는 달리 큐리오 친화적이고, 친구가 된 후 즐겁게 잘 지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다 등장한 경제 봉쇄의 원인 카츠야가 등장해 다시금 녹스를 태양 아래 타죽게 될 위험에 처하게 하고, 그 이후 유가 엄마에게 입양이 되어 녹스가 될지 말지의 기로에 서게 된다. 큐리오가 태양 아래 써낸 그림과 글은 녹스의 시선으로 봤을 때도 꽤나 인상을 준다고 한다. 과연 모든 업무와 생활에 최적화된 능력을 뽐내며 논리적인 사고를 뽐내는 녹스에게 견줄 만한 잘난 점이 문화예술뿐일까. 마치 보기 좋은 골동품을 대하듯 그들을 보존하려는 시각 또는 열등한 큐리오를 기생충이라 폄하하며 자신을 차별주의자라고 인정하는 관점이 녹스 내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한다.
각자 초점을 두는 본질에 따라 가졌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 모든 생명은 무릇 태양의 빛을 받으며 자란다. 생명력 그 자체라고도 칭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졌지만 태양만큼은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은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상실이다. 후지타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갈구하고 동경하게 되나 그런 시야로 본 말은 태어날 때부터 녹스가 아닌데다 학교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누리지 못한 데츠히코에는 허황되고 실없는 소리일 뿐이다. 카네다는 녹스가 된 이후로 확실하게 나아진 삶을 살고 있었으나 세월을 직격으로 맞은 소이치를 보고 처음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실상은 녹스의 저출생 문제가 대두된 이후로 큐리오 아이를 입양해 녹스로 만드는 방식이 성행하며 오히려 녹스가 큐리오에게 기생하고 있다고 말하는 카네다. 태양을 보지 못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란 생각에 소꿉친구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햇빛을 쬔다. 녹스를 살해한 뒤 숨어 지내다 돌아온 준코의 남동생 카츠야는 마을을 보고 이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냐며 되레 일갈한다. 당시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불이 나게 되고, 불을 지른 범인을 서로 의심하며 분열이 생기다 결국 마을이 붕괴된 것을 알지 못한 채 10년이란 시간을 빚져놓고 마을을 위해 돌아왔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모습은 어딘가 염치를 버리고 온 것이 분명할 거란 생각이 들게 만든다. 결국 그렇게 혐오하던 녹스의 피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드디어 준코가 가진 은폐의 책임을 내려놓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추첨에서 떨어진 데츠히코는 녹스가 되길 갈망하나, 앞서 추첨에 당첨됐지만 레이코의 선택으로 입양이 된 유로 인해 데츠히코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 돌아온 유는 사뭇 달라진 모습으로 아버지와 재회하며 큐리오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겠다며 그동안의 시간이 아깝다고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답을 이야기한다. 겉모습이 청결해진 것과는 달리, 절박하고 경계심 가득 걸걸하게 외쳤던 유는 온데간데 없이 어딘가 이질적인 모습으로 지난 날의 시간은 아무 의미 없었노라고 명쾌한 머리로 미래를 생각하고 그럴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유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몰아친다. 다 컸다고 웃어보인 뒤 뒤돌아서서 유는 갔다고 외치는 아버지 소이치의 절망을 함께하며, 녹스가 된 이후 인간성 내지는 공감과 감정이 논리적으로 불필요한 상태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광경을 고스란히 본 데츠히코의 선택은 어느 쪽으로 향할지를 열린 결말로 두며, 극은 각자의 입장을 비추고 막을 내린다.
심오하고 무게감 있는 입장 차이, 매력적인 연출과 소품 녹스와 큐리오로 분열된 인류를 단순히 언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중에서도 녹스를 경멸하고 동경하는 큐리오, 큐리오에게 친화적이고 차별하는 녹스 등 다양한 입장을 가진 등장인물들의 외관은 매우 명확히 분류된다. 특히나 녹스들의 군더더기 없으며 유독 더 재빠르고 로봇처럼 움직임을 거듭하는 몸동작의 표현력이 도드라진다. 검문소로 주로 통용되나 녹스와 큐리오를 가로짓는 대각선의 무대 위 길은 비어 있다. 허나 무대 앞과 위는 그동안 인류 문명의 편린들이 구석구석 박혀 마치 동굴이나 골동품점을 연상시키는데, 그 사이 햇빛이 비치는 효과를 주며 석양이 지거나 일출을 표현하면서 극의 전개를 돕는다. 녹스든 큐리오든, 모순된 행동과 어리석은 판단을 하기에 우리는 모두 짐승이나 기계가 아닌 다 같은 인간이라는 진실을 전달하고 싶었다는 김정 연출의 말을 곱씹어보면서, '우리'라는 집단 아래 스스로가 취할 관점과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사진제공 : 국립정동극장 |
